디지털 헬스케어 대세 됐지만…韓, 규제장벽에 여전히 '걸음마' [김정은의 바이오·헬스 탐구]

입력 2022-09-06 17:52   수정 2022-09-07 01:02

3000만 건. 지난 2년 반 동안 우리 국민의 비대면 진료 이용 건수다.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을 감안해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해 줬고, 사람들은 비대면 진료의 편리함과 유용성에 눈 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인프라도 한몫했다.

코로나19는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은 재앙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장을 열어준 계기가 됐다.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수요가 폭증하면서 이 시장은 세계적인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급부상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열풍이 분 데다 고령화 가속화, 팬데믹이라는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은 2027년 5090억달러(약 700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매년 18.8%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내 생태계는 열악한 상황이다. 송승재 벤처기업협회 디지털헬스케어 정책위원장(라이프시맨틱스 대표)은 “우리만 빼고 전 세계가 달려가고 있다”고 했다. 비대면 의료가 언급된 지 30여 년이 넘었지만 이렇다 할 발전은 없었다. 최근 의료계가 전향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데다 정부가 디지털 헬스케어 육성을 국정과제로 삼고 지원에 나서는 등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과연 새 시장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인가.

최근 디지털 헬스케어가 뇌졸중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뇌졸중 환자들은 균형 감각이 저하돼 똑바로 걷기 힘들고 잘 넘어진다. 연구진은 증강현실(AR)을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를 치료에 접목했다. 모니터에 부착된 AR 센서가 가정에서 환자의 운동 기록을 체크해 병원에 자동 전달한다.

뇌졸중 환자 68명을 대상으로 한 달간 실험해 보니 균형 기능 및 삶의 질 등에서 디지털 헬스 방식이 기존 운동 프로그램보다 점수가 높았다. 연구를 주도한 장원혁 삼성서울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AR 재활 프로그램은 3차원(3D) 가상 이미지로 현실감을 더해 낙상사고가 없었고 심리적 안정감도 향상됐다”며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뇌졸중 환자들에게 맞춤 재활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헬스케어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과거엔 질병이나 질환이 발생하면 사후 치료를 했다. 하지만 이젠 개인형 맞춤 치료 방식의 스마트 의료장치로 의료 서비스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주목받는 이유는 고령화 시대 헬스케어 효율화의 필요성이 대두된 데다 IT 기술로 확산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5세대(5G) 통신 상용화로 실시간 건강 상태 확인, 원격의료 및 로봇 원격수술, 클라우드 기반의 의료 시스템이 가능해졌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디지털 헬스케어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동안 IT 기술 발달에도 불구하고 생명과 직결됐다는 점 때문에 헬스케어 산업의 디지털화는 제도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사람들은 디지털 기반의 원격의료와 의약품 배송, 건강관리 등을 경험하게 됐다.

게다가 디지털 헬스케어는 전통 의약품보다 연구개발(R&D) 비용 및 시간 측면에서 효율적이고 IT 기술을 활용한 환자별 맞춤 치료까지 가능하다. 이 때문에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엔 디지털 헬스케어가 ‘뉴노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머지않아 예방 헬스케어 중심의 지능성 의료 솔루션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게 업계 전망이다
“써보니 편하다”…비대면 진료 봇물
이제 사람들은 열과 기침이 나면 모바일 앱에 들어가 진료를 보고 싶은 의사를 선택한다. 곧 의사로부터 전화가 온다. 화상·전화를 통한 진료가 끝나면 1~2시간 뒤 배달 업체가 약을 집 앞까지 갖다준다. 환자는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업무 때문에 병원에 가기 힘든 직장인,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도 쉽게 진료와 약 처방을 받을 수 있다. 비대면이다 보니 공간의 제약도 없다. 경북에 있는 환자가 서울의 의사에게 진료받는 것이 가능하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바꾼 풍경이다. 국내 최대 비대면 진료 플랫폼인 닥터나우의 장지호 대표는 “주요 사업이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인데, 2019년 창업 당시만 해도 이 사업은 불법이었다”고 했다. 의료법 31조는 의료인은 의료기관 내에서만 의료업을 하도록 규정한다. 약사법 50조는 의약품의 판매 장소를 약국이나 점포로 제한한다. 의사가 전화로 환자를 진료하는 것, 배달 업체가 약국에서 약을 받아 환자에게 갖다주는 것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달라졌다. 정부는 2020년 12월 감염병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 이상이면 ICT를 활용해 의료기관 외부에 있는 환자에게 진단, 상담 및 처방을 할 수 있도록 감염병예방법을 개정했다.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을 할 수 있는 길이 한시적으로 열린 것이다. 현재 코로나19 상황은 심각 단계다.

비대면 진료는 빠르게 우리 일상을 파고들었다. 비대면 진료 앱인 엠디톡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비대면 재진료 건수 비율은 80%를 넘었으며, 3회 이상 진료 건수도 68%에 달했다. 그만큼 비대면 진료의 만족도가 높고 편리하다는 뜻이다. 국내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50개가 넘을 만큼 관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산부인과 특화(닥터밸리), 맞춤 상품 판매(올라케어), 영양제 구독(바로필) 등 차별화한 서비스로 나름의 수익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원격의료 허용 논의 본격화…관건은 약 배송
정부는 코로나19로 한시적으로 허용했던 비대면 진료의 합법화를 추진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중개·알선 금지 등을 골자로 한 ‘한시적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다만 의료기관이 비대면 진료만 하거나 약국이 약 배달만 전문으로 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에서도 관련법 개정 움직임이 활발하다.

원격의료는 환자와 의료진 간 대면진료라는 기존 의료 서비스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첨예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의료계가 원격의료를 반대한 것은 동네 병·의원의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의료계 반대에 정부는 2007년부터 격오지 등에서 원격의료 시범사업만 해 왔다.

최근 들어 ‘결사반대’하던 의료계도 전향적인 입장으로 바뀌었다. 비대면 진료는 이젠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는 판단에서다. 서울시의사회는 지난해 10월 자체적으로 원격의료연구회를 구성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보의학전문위원회를 출범하고 대안 강구에 나섰다. 온라인 진료로 인한 오진 사고, 비대면 의료 허용 병원 범위 등에 대한 의료계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서다.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약 배송이 대표적이다. 대한약사회는 불법 약 유통 조장 등을 이유로 약 배송 허용에 대해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약 배송이 허용되지 않으면 원격의료는 절름발이가 되기 십상이다. 진료를 온라인으로 받고서도 약을 조제받기 위해 약국에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비대면 진료 제도화, 의약품 배송 등이 정부의 규제 완화 과제에 포함되자 대한약사회는 성명을 내고 “비대면 진료 한시 도입으로 무분별한 조제약 배달 및 불법 의료 광고를 통한 환자 유인행위, 편법적인 약국 모집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며 “보건의료체계가 왜곡될 뿐 아니라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선점 위해 각축전 벌이는 주요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8년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을 1조9000억원 규모로 추정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국내 시장의 향후 5년간 성장률을 15.3%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는 글로벌 성장률인 18.8%보다 낮은 수치다. PwC는 최근 보고서를 내고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 이하로 미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의약품 시장 규모가 글로벌 대비 2% 수준인 것에 비하면,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걸음마 수준이라는 이야기다.

글로벌 경쟁이 시작된 가운데 각국 정부는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며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이 이 시장을 선도하는 가운데 유럽과 중국이 공격적으로 세를 넓히며 뒤쫓는 형국이다. 특히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전통 의료기업이 아닌 애플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알리바바 같은 IT 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헬스케어의 디지털화는 데이터와 러닝머신, 인공지능(AI)에 강점을 지닌 빅테크 기업에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고도화된 기술을 헬스케어에 접목하며 이 생태계에 진입해 산업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미국은 디지털 헬스케어의 본고장 격이다. 미국은 국토가 넓어 의료 사각지대가 많은 데다 치료비가 비싸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 비중이 가장 높다. 의료비 절감 차원에서 1990년대부터 원격의료 제도를 합법화하는 등 일찌감치 제도적 환경을 구축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일시적으로 모든 의사의 모든 환자에 대한 원격의료가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이 같은 정책에 따라 미국의 원격의료 활용은 코로나19 이전보다 39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뿐 아니라 주요국 정부 역시 헬스케어 관련 규제를 빠르게 완화하는 추세다. 특히 독일은 정부가 나서 산업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규제를 혁파했다. 2020년 1월 디지털 헬스케어법을 신설해 관련 앱에 대해 3개월 만에 허가를 내주고 1년간 수가를 보장해줬다. 이 같은 진흥책 덕분에 독일에선 우울증, 비만 관리, 불면증, 고혈압 등 다양한 질병군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중국도 우리보다 훨씬 앞서가는 상황이다. 국가 차원의 막대한 자금 투입으로 향후 시장을 대비하겠다는 전략이다. 넓은 국토 때문에 다소 떨어지는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비대면 진료를 확대하는 한편 미국이나 유럽처럼 정밀의료 관련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코로나19 발발 초기인 2020년 2월 의료기관의 원격의료 서비스를 본격 확대하고 일반적인 질병뿐 아니라 만성 질환까지 대상으로 한 온라인 처방 및 약 배송을 도입했다. 원격의료를 통한 병원 치료 및 약 처방 비용을 공보험으로 제공하고 있다.
정부, 미래 성장 동력으로 집중 육성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래 성장 동력의 한 축으로 삼아 집중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헬스케어 산업이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최근 역대 정부 중 처음으로 국정과제 단위에서 디지털 헬스케어를 언급하며 10대 중점 과제로 추진하기로 하는 등 대대적인 지원 사격을 공표했다.

10대 과제는 크게 시장 창출 지원과 데이터 기반 융복합 헬스케어 기기 개발, 산업 활성화 기반 조성 등이다. 혁신 의료기기가 현장에서 빨리 활용될 수 있도록 심사 기간을 현행 390일에서 80일로 대폭 단축하기로 했다. 부처 간 협업을 위한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바이오헬스 특화 규제 샌드박스를 신설하는 등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최근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 규제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헬스케어는 생명과 건강을 다루기 때문에 다른 산업과는 결이 좀 다르다. 보건의료 시장은 의료 행위라는 특성 때문에 과거 규제 산업 쪽에 더 가까웠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 각종 규제도 산적하다. 급속한 팽창에는 부작용이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IT 기술과 의료기술, 인프라 측면에서 다른 나라보다 앞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제도 등이 받쳐준다면 금세 날개를 달 수 있고, 그만큼 발전 가능성도 크다. 사회적 합의를 신중하게 이뤄가면서 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담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김정은 바이오헬스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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